장안산 가을산책
2017년10월 15일 흐림
무룡고개~영취산~장안산~범연동
약 9 km 5시간 소요
무려 열흘간의 추석연휴가 있었는데
연휴전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가을신행 한번도 못하고
다른이들의 산행기만 눈팅하다가
전에부터 가보고 싶었던 장안산을 초심산악회따라 나선다.
근육년만에 다시 찾은 무룡고개....
장안산은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올라야하는데
오늘 코스가 짧으면서도 편안한곳이라
도로 왼편의 백두대간 영취산을 들린다.
영취산 오름길에 피어있는 구절초가 외롭구나...
엉취산에 오른후 다시 무룡고개로 내려가야하기에
모두 배낭을 차에두고 가볍게 오르는데 미련곰탱이가
배낭을 지고 오르다가 무거우니 등로 한쪽에 팽개치고
카메라만 들고 올라 정상석 사진을 얻어온다.
영취산이란 지명은 <대동여지도>에 전국적으로 8곳이나 된다.
백두대간 영취산의 유래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진주 남강으로 뛰어든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논개가 13세가 되던 해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 주달무는 당시 장수 토호 김풍현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았다.
그러나 논개 모녀가 완강하게 반대하자 주달무는 논개 모녀를 상대로
장수 현감에게 소장(訴狀)을 올렸다.
결과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해서 괴롭히는 처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결이 나고 논개 모녀를 무죄방면했다.
이 때 장수 현감이 나중에 논개 부군이 되는 최경희 였다.
오갈데 없게 된 모녀는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후 현감 부인은 세상을 뜨고, 결국 이게 인연이 되어
최경희와 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된 최경희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당하자
최경희를 비롯한 장수들은 촉석루에 모여 나라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이에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으로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10여일간 내린
장마비가 넘실대는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다.
烈女를 넘어 義人이 된 논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아래 바위에서 왜장(倭將)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 들어 순절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지만
기록들은 너무 소략하기 때문에 생애를 추적하려면
본관으로 추정되는 신안(新安) 주(朱)씨 가문의 구전(口傳)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논개가 태어난 곳은 전라도 장수현 임내면 주촌(朱村)마을로
현재는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이다.
그리고 묘는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옆에 있는데,
장수군의 의암사적보존회에서 십수년동안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현장 탐문조사와
경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및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친 끝에 1976년도에 발견하게 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함양군의 논개묘 성역화사업으로
높이 1.2m, 직경이 5.4m, 길이 5.3m에 달하는 남향의 대형 봉분을 다시 만들고
비석을 세우며 주위를 정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그 충절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7월 7일 유림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고 한다.
묘 위측에는 임진왜란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되어
진주성에서 싸우다 순절한 최경회 장군의 묘도 함께 있다.
그러니까 논개는 백두대간의 서편에서 태어나고
그리고 동편에서 잠들어 있구나!
논 개 (변 영로)
거룩한 분노(憤怒)는
종교(宗敎)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情熱)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푸른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태어난 장수군, 잠들어 있는 함양군,
순절한 진주시가 모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친일파인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는 이유로
(1976년 5월 20일 정도 였을까...고향인 함양군에서 군 징집검사를 마치고
진주에서 공부하던 친구를 찾아 진주에 갔을적에 촉석루 구경을 하였는데
지금의 촉석루처럼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무성한 이카시아 숲에서풍기는 꽃의 향기가 무척이나 진했으며
김 화백이 그렸던 논개할머니의 영정을 보았었으며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주정신지키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뜯어낸 뒤 진주시에서는
표준영정 제작을 추진하여 새로운 논개 표준영정을 그릴 작가로
당시 충남대교수였던 윤여환(52)교수를 선정하여 새로 그렸다고 하고
윤 교수는 "논개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신안주씨 여자 48명의 얼굴 특징을 형징인류학적으로 분석했다"며
"한국 전통초상화 기법의 생명인 선을 다양하게 살려 얼굴 표정에서
논개정신이 배어나오도록 그리겠다"고 하였으며,
문화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에서 머리와 복식 표정 등에 대한 고증과 심의 를 거친 후
비단에 채색해 심의위에 제출되고
최종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논개 표준영정으로 선정되어
진주 의기사와 장수 의암사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다시 무룡고개로 내려와 장안산으로 오른다.
2012년 2월 대간길 걸으며 바라본 장안산의 능선...
몇해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먼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
함께온 산우들은 배낭을 가지러 가고
그들이 올때까지 홀로 걷는다.
가슴시린 혼자의 시간조차 즐거울 정도로
아름다운 등로가 펼쳐져있구나...
등로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맨발로 걷고싶다.
마루금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을산을 홀로즐기며
가을노래도 흥얼거린다.
왼쪽으로 나란히 가는 백두대간 능선도 바라보고...
대간길 걸으며 새겨두었던 그 때의 추억 한자리를 되돌아본다...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잠시쉬면서
막걸리와 너의 배,나의 배도 나누어 먹고....
강물이 저 혼자 흐르다가 또 다른 강물을 만나
하나가 되듯 우리도 서로 손잡고 물이 되어
한 세상 흐르다가 먼바다에 이르러 갈대꽃처럼
피어나면 좋겠어
그저 어느 한 계절의 모퉁이에서 금방 불붙은 사랑처럼
금세 피었다가 시들고 마는 진한 향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풍겨나는 구절초 같은
은은한 향기였음 좋겠어
억새풀처럼 머리가 하애지고 잔주름이 늘어난다고 해도
두 손 꼭 잡고 서서 저녁 숲에 내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았으면 좋겠어
가을비 찬바람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산비알 모여드는 낙엽 같은 그리움을
허전한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전국의 같은 이름의 백운산중에서 재일 높은 백두대간 백운산(1,278m).
억새가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군락지에서
지리능선을 바라보는데 구름이 가리고 반야봉정상만
살며시 보여준다.
대간길 걸을때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능선...
만추의 바람이 부는대로 억새의 물결이 파도치듯 일렁인다.
억새줄기 사이에 산부추도 곱게 꽃을 피웠네...
멋진 풍경에 즐겁게 사진도 남가고...
자연과 하나가되니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지는구나....
환한 그대들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운 가을여인들...
지리산쪽을 한번 더 바라보고 가을속으로 다시 걷는다.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즐거운 점심을....
준비해온 맛난 음식도 서로 나누고....
몸이 좋지않아 대기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집에서
쉬려다 쉽게 올수있는 곳이 아니어서 조금 무리하였는데
오기를 잘하였구나...
장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덕유...
할미봉,깃대봉,영취산등을 거느리고
이마에는 구름을 이고 있네...
지나온 억새 군락도 뒤돌아보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가을에 취해서...
그대사랑 가을사랑 신계행
산보하듯 즐겁게 등로를 걷는다...
가을산
다녀와서
홍시처럼 앓는 마음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단풍만 담으려 했는데
불을 안고
왔
는
지
꿈을 꾸듯 즐겁게 걸은 장안산,
가을산에 취한채 비몽사몽 이틀여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야 사진도 정리하고 산행기를 쓰는데 아직도
그곳에 있는듯 행복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