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쿵저러쿵

이육사인가 이은하인가

갱섭이 2008. 3. 17. 14:31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육사 시인는 낙동강 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자서전과도 같은 수필 '계절의 오행'에서 시인은 고향의 낙동강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의 한편이 허전하고 무엇이 모자라는 것만 같아 발길은 저절로 내 동리 강가로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동리 옆에는 낙동강이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 내 고장이란 낙동강 가에는 그 하이얀 조각돌이 일면으로 깔리고, 그곳에서 나는 홀로 앉아 내일 아침 화단에 갖다 놓을 차디찬 괴석들을 주으면서 그 강물 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봄날 새벽에 홍수를 섞어서 쩡쩡 소리를 내며 흐르는 소리가 청렬한 품도 좋고 여름 큰 물이 내릴 때 왕양한 기상도 그럴 듯하지만, 무엇이 어떻다 해도 하늘보다 푸른 물이 심연을 지날 때는 빙빙 맴을 돌고 여울을 지나자면 소나기를 모는 소리가 나고 다시 경사가 낮은 곳을 지날 때는 서늘한 가을로부터 내 옷깃을 날리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서는 큰 바위를 때려 천병만마를 달리는 형세로 자꾸만 갔습니다. 흘러 흘러서, 그 때 나는 그 물소리를 따라 어디든지 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낙동강은 시인 이육사를 길러 냈다. 낙동강은 시인의 허전한 마음과 막연한 그리움을 달래 주면서 또한 확장시켰다. 시인의 마음은 강물을 따라 흘러 먼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시인의 시심은 푸른 바다에서 아쉬운 꽃을 피웠다. 시인은 한 때 포항 호미곶 인근에 머물며,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라며 인간 본연의그리움이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장된 마음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의 시 '광야'에서,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강물은 가난한 노래의 씨와 매화 향기를 실어 날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시대를 뛰어 넘어 낙동강은 시조 시인 이호우를 탄생시켰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 망정 이밤 더디 새소서 

 

   낙동강에는 역사가 흐르고 시가 흐르고 전통이 흐르고 미움과 더러움을 정화하는 물결이 흐른다.

 

낙동강의 해평 습지. 모래톱이 고니(백조)들에게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렇게 낙동강은 이육사와 이호우를 키워 왔고 잘 활용되어 왔는데, 쌩뚱맞게도 이은하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천과 물줄기가 있는데

그 경치를 이제까지 버려두고 있었네

모두가 버려진 물줄기 속에... 운운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운하 바람이 그렇게 거세었던가? 우리 강의 역사성이나 정서나 강에 흐르는 시와 노래를 모두 운하에 처박아 버리려 한다. 운하가 없었어도 강은 절대 버려지지 않았다. 이은하도 학교 다닐 때 이름을 들어 보았을 목은 이색 선생은 지금도 여주 사람들이 여강이라고 부르는 남한강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천지는 가이 없고 인생은 덧없거늘

호연히 돌아갈 뜻 어디로 가야 하나

여강 한 구비 산은 마치 그림 같아

반쯤은 그림인 듯 반쯤은 시인 듯

 

 여주 신륵사에서 바라 본 그림같은 남한강의 정경.

 

 

   이색의 고향(경북 영덕 영해) 친구였던 나옹선사는 여강 옆에 자리잡은 신륵사에서 입적했는데 그의 선시 또한 강물과 무관하지 않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여주의 한 음식점 벽을 장식하며 사랑받고 있는 나옹선사의 선시 '청산은 나를 보고'

 

   이색, 나옹선사, 이육사, 이호우. 그들은 케케 묵은 옜날 사람이거나 작고한 분들이라고 하자. 충주의 시인 신경림은 최근까지도 강을 활용하여 노래를 불렀다. 그의 명시 '목계장터'는 사실 장터 뿐 아니라 강 따라 사는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이은하 뿐 아니라 강에 운하를 파서 망치겠다는 사람들은 강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공부 좀 한 뒤에 무슨 말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 조웅전 - 연대 미상의 조선 시대 고대소설

* 박가분 - 최초의 국산 화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