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료

[스크랩] 한 겨울 용추계곡 산책

갱섭이 2018. 10. 10. 20:46

 

용추계곡 산책

 

 

 

 

설 연휴 둘째 날(2012.1.22, 일) 어둠이 남은 이른 아침에 용추계곡으로 산책을 나선다. 용추폭포까지 다녀 올 요량으로 차가운 아침공기를 마시며 빠른 걸음으로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날이 밝아 올 때쯤 용추사를 지나고, 이왕 나선 길 수망령까지 걸어갔다 오기로 한다.


올라갈 때는 어두워서 날이 밝은 후와 내려올 때 찍은 사진으로 용추계곡을 정리한다. 어디부터 용추계곡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보통은 심원정부터라 하지만) 우리 동네 앞 황석산 물이 합류하는 연암물레방아 공원부터 수망령까지를 정리 해 본다.


연암물레방아 앞에는 정유재란 때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황석산성을 쌓을 돌을 마귀할멈이 앞치마에 담아 나르다가 황석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 곳에 버렸다는 “돌모리”가 있다.

 

# 연암물레방아 공원 

 


용추계곡은 왼편으로 황석산(1,190m)과 거망산(1,184m) 산줄기와 오른편으로 기백산(1,331m)과 금원산(1,352m) 산줄기가 수망령(928m)에서 만서서 양 산마루 가운데를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큰 골자기는 왼편으로 산내골, 가는골, 불당골, 지장골, 태장골, 오른편으로 말밭골, 도숫골, 시흥골 등 크고 작은 지계곡의 물이 흘러들어 지우천을 이룬 후 남강 상류인 금천(금오강)으로 흘러간다.


이곳은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열하일기'를 통해 물레방아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뒤, 12년 뒤 정조의 부름을 받고 안의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연중 수량이 풍부한 용추 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실용화가 된 곳이다.

 

 


옛날 안의현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심진동, 화림동, 운학동)이라 전한다. 이곳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이 있다.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 (1806년)에 세운 것으로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계곡의 곳곳에 전설과 유래를 적은 현판들이 세워져있다. 심원정을 지나 3㎞가량 더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장수사 일주문이 외롭게 솟아있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 그러나, 장수사의 흔적은 일주문만을 남긴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소실되고,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사찰의 흔적을 찾아 '용추사'에 들르면 절 앞에서 들리는 우뢰와 같은 소리, 용추폭포다. 용추계곡의 깊은 곳에서 모이고 모여서 이룬 물이 용호로 떨어지니 이곳에 서면 여름더위는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화난 용이 몸부림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고 폭포 앞에 서면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용추폭포에서 약 30분을 걸어 올라가면 상사평마을이 나오고, 용추계곡 끝에는 함양군에서 조성한 '용추자연휴양림'이 있다.

-함양군 관광안내-


 

연암물레방아 공원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 계곡에 삼형제 바위가 있다. 옛날 “세 형제가 부모 산소를 가기 위해 이 곳 계곡물을 건너게 되는데 물이 많아 큰 형이 동생들을 업어 건너기로 하고 막내부터 업어 건너 놓고....”라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올법한 안내판이 서 있다.

 

# 삼형제 바위 


조금 위에는 메산나 소가 있고, 소 건너에는 매바위, 소 앞에는 용자정이라는 근래에 세운 정자가 서 있다. 정자 앞에는 “용추 질굿내기”라는 안의 민요 「길군악」가사 일부가 새겨져 있다.


오르랑 내리랑 잔 기침 소리는

자다가 들어도 우리님 소리라

(후렴) 얼시구 가 갔으면 갔지 제가 설마나 갈소냐


용추폭포야 네 잘 있거라

명년 춘삼월에 또 다시 만나자

(후렴) 얼시구 가 갔으면 갔지 제가 설마나 갈소냐


임의 생각을 안?랴 해도

저 달이 밝으니 저절로 나노라

(후렴) 얼시구 가 갔으먼 갔지 제가 설마 갈소냐


오동추야 달이 밝은데

님의 생각이 절로 나노라

(후렴) 얼시구 가 갔으면 갔지 제가 설마나 갈소냐


춥나 덥나 내 품에 안겨라

벨 것이 없거든 내 팔을 베거라

(후렴) 얼시구 가 갔으면 갔지 제가 설마나 갈소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노나니

(후렴) 얼시구 가 갔으면 갔지 제가 설마나 갈소냐


용추계곡이 전국 여러 곳에 있듯이 매바위도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이 곳 매바위처럼 매를 닮은 바위는 없다. 이 매바위는 옛 조선의 도성을 터 잡은 무학대사가 처음 찾아낸 바위로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절친한 관계를 시기한 정도전의 계략에 의해 무학대사가 되레 쫓기는 처지가 되어 어디든지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곳 계곡을 들리게 되었다. 헤집어 들수록 가경이라 거듭 탄복해 하면서 이 소(沼)앞에 당도했다. 이때 무학대사의 머리위를 나르던 한 마리의 새가 갑자기 풀숲으로 숨으며 맥을 못 추는 거였다.

 

대사가 그 연유를 퍼뜩 알아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사의 눈에 띈 것은 큰 매였다. 매가 골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골짝 어디에 꿩 설에 속하는 길지(吉地)가 있다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해서 찾아진 곳이 바로 현재의 은신암(隱身庵)터다.

 

 

# 용자정(용추자연보호협의회에서 지었다고 용자정이란 이름을....) 

 

# 질굿내기 

 

# 메산나 소(어릴때 피리 낚시할때는 무지 깊고 큰 소였다) 

 

# 매바위 

 

# 소방서에서 물길 안내도도 세웠다. 

 

 


매산나 소 위에는 요강소가 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요강소에는 해마다 여름철이면 익사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세월따라 물길이 돌려졌는지 원래 물길보다 옆으로 흐르는 물이 더 많다.


 

 

# 요강소 

 

다시 신작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다리가 계곡을 건너고 그 곳에는 작은 동네 사평마을이 있다. 예전에는 ‘물삼거리’라고 했는데 물길이 삼거리도 아닌데 왜 물삼거리라 불리웠는지는 모를 일이다. 예전 화전민들이 모여 살도록 나라에서 군유지(?)에 지은 독가촌으로 땅이 사유지가 아닌지라 주민들이 집을 증개축하려 해도 못하는 딱한 현실이다.


마을 건너편에는 지지난해인가 함양군에서 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은 오토캠핑장이 있는데 설 연휴에 몇몇이 겨울 캠핑을 왔는지 텐트 몇 동이 지어져 있다.

 

# 오토캠핑장 

# 사평(물삼거리)마을 

# 왼편으로 황석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마을부터는 도로 왼편으로 계곡이 흐르고 조금 위에 꺽지소가 있다. 꺽지소는 용추계곡에서 가장 너른 소로 안내판에는 좌측 황석산과 우측 기백산의 물이 합수되는 양대 명산 정기가 어우러지는 곳이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또 이 소에는 집채만한 꺽지가 살아서 꺽지소라 불리고 인근에 풀을 뜯는 황소를 한 입에 삼키곤 했다는데 이 또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꺽지소 조금 위에는 용소가 있다.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소 양쪽에 용을 닮은 바위가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 안내판에는 승천하려는 용이 승천을 하게 되면 이 고을에서 멀리 중국까지 다스리게 될 인물이 태어난다하여 중국 조정에서 급파한 이여송이 승천을 서두르는 용의 머리를 치라는 밀명에 따라 이여송이 단칼에 용의 목을 치니 몸에서 나오는 피가 골짜기 전체를 물들였고 머리를 잘린 용이 요동을 치니 계곡 전체가 뒤흔들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아무튼 오른편 바위가 칼에 잘린 듯한 형상이고 그 위에는 바위에 제법 깊은 웅덩이가 파여져 있다. 용소 바로 위 물가에는 아름다운 반송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물가에 소나무가 독야청정한 모습이 그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 꺽지소 

 

 

# 용소 

 

 

 

# 용소 뒤 물가 반송 

 


조금 위 왼편으로 현대식 건물들이 몇 채 서 있는 마을이 ‘장자불’이다. 동네 이름 유래는 모르겠고, 예전에는 빈곤한 산촌 동네가 외지인들에 의해 현대식 집들이 들어선 동네로 변했다.


장자불 입구에서 한 모퉁이를 돌아 오르면 오른편에 도숫골에서 흘러내리는 지계곡이 있고 그 계곡에는 천길 낭떠러지 상사바위가 있다. 도숫골은 일주문 뒤에서 기백산을 오르는 주등산로 계곡이다. 도로 옆에는 부도 9기가 서 있다.

 

 

# 장자불 

 

# 일주문 앞 부도 


그리고 주차장이 있고 그 뒤에는 장수사 일주문이 외롭게 우뚝 서 있다.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의 오른편 기둥은 칡, 오른편 기둥은 싸리나무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때 국군이 빨갱이들 못 들게 불 지른 뒤 지금은 빈 터만 휑하니 남아있어 안타깝다.


일주문 앞에서 왼편으로 새로 낸 길을 따라가면 오른편 아래로 용추폭포가 보이고 그 폭포 뒤에 아담한 용추사가 서 있다. 여름철 물이 많을 때에는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는 용추폭포는 소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고 용이 몸부림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고 폭포 앞에 서면 한여름 더위에도 추위를 느낀다. 용추폭포는 무릉계곡, 문경, 가평, 무주 등 여러 곳에 있다지만 이곳 용추폭포의 비경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 덕유산장수사일주문 

 

# 용추폭포 

# 폭포 뒤 용추사 

 

 

 


용추사(참고자료)

487년(신라 소지왕 9) 각연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용추암(龍湫庵)이라고 불렀다. 각연이 장수사(長水寺)를 세운 뒤 부속 암자 중 하나로 지은 절이다. 고려 말에 자초가 중수하고 수도처로 삼았으며, 1681년 운흡과 수오가 절을 아래쪽으로 옮겨 중창하였다. 1684년 문찬이 법당을 지었고, 1685년 문감이 불상을, 이영생이 시왕상을 각각 조성하였다. 1686년 김상운이 누각을 짓고, 1687년에는 지찰이 팔상전·천왕문·요사채를 각각 세웠다.


1734년에 화재로 여러 전각이 불에 탔으나, 호경과 두인·영우 등이 대부분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 때 〈묘법연화경〉 등 불경 100여 권을 새로 찍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주지 현조가 대웅전을 새로 짓는 등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백련암이 있고, 옛 장수사의 암자였던 서흥암과 원적암·견성암·영악암·보제암·천진암·무주암 등은 터만 남아 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종루·구법당·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용추사일주문은 1972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장수사에 있던 것으로 1950년 장수사가 폐사되자 1953년 안의면 당본리 봉황대로 옮긴 뒤 1959년에 현 위치로 옮겨 중수한 바 있다. 팔작지붕 아래에는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밖에 일주문 옆에는 각연과 문곡당 등 여러 고승의 부도가 서 있다. 한편 절이 들어선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등 절경이 많아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 예전에 용추사는 구름다리 건너 걸어서 나녔다.  

 

 

# 구름다리 건너 부도밭

예전 십대 후반인가? 인근동네 처녀가 편지를 보내와서 난생 처음으로 데이트하며 이곳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손도 잡아 보지 못한채 뭔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 처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월남치마를 입었던 그 처자는 어디서 어떻게 잘 살고 있을까?  

 

# 거망산 오르는 지장골 입구 

# 계곡물이 수정처럼 맑다. 

 

 


용추폭포를 조금 위 왼편으로 거망산을 오르는 지장골 입구를 지나면 몇몇 민가가 사는 독가촌이 ‘아랫새피’라는 동네다. 조금 위 ‘윗새피’라는 동네가 있어 예전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던 동네였지만 지금은 몇 집이나 사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서 오른편으로는 금원산과 기백산을 오르는 시흥골이고 왼편으로는 거망산을 오르는 태장골이다.

 

 

# 애랫새피 

 

# 곳곳에 이름 없는 폭포가 있다. 


신작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다리를 건너게 되고 ‘윗새피’라는 작은 동네가 있고 동네에서 동네 위 다리를 건너면 용추자연휴양림이 있다. 함양군에서 지은 용추자연휴양림은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산림문화수련관을 비롯해 야영장, 오토캠핑장, 산림욕장, 전망대, 대피소, 물놀이장, 야외테이블, 취사장, 나무다리, 징검다리, 나무테크산책로, 야외샤워장, 임간교실, 체력단련장, 어린이놀이터, 급수대 등 매우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고 하는데 한 가지 단점은 진입도로가 험하다는 것이다. 홈페이 주소는 http://yongchoo.or.kr


윗새피 뒤에서 시작되는 용추자연휴양림은 계곡과 길 따라 길에 늘어서 있고, 그 중간 오른편에 용추산삼관광농원의 산삼밭이 있고 또 구준부리 소, 그리고 휴양림 끝나는 지점의 다리를 건너면 왼편으로 은신암 들어가는 입구가 숨어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도로에 눈이 남아 있다.

 

 

# 누가 뭔 뜻으로 이 돌탑을 세웠을까? 

 

# 용추자연휴양림이 시작되는 윗새피 

# 용추자연휴양림이 시작된다. 

# 사방댐이 여름철엔 수영장으로...  

# 산삼관광농원 

 

# 계곡 물가 숲속에 방갈로 

# 방갈로 뒤 구준부리 소 

# 휴양림 끝나는 지점의 은신암 입구 

 

# 은신암 입구 안내판 

 

 

은신암 입구에서 눈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왼편 계곡 건너에 용추계곡 마지막 민가가 한 채 있다. 이곳 깊은 골짜기에 터를 잡은 사람은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으로 그 집의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 초등학생 때부터 외지로 유학을 나가야 했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방학 때 가끔 만나는 아이들은 도회지 아이들처럼 얼굴이 하얗고 예뻤다. 제법 너른 농지를 일군 이북사람은 얼마전에 죽었다는데, 그 아들이 사는지 개량한 집 마당에는 승용차도 있고, 굴삭기도 한 대 서 있다.

 

# 용추계곡 마지막 민가 

# 등산객 한사람이 차를 세워두고 갔다. 

# 돌아보니 멀리 황석산이 뽀쪽하게 솟아 있다.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는 신작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오른편으로 금원산 오르는 임도가 있고 한모퉁이 더 돌면 드디어 수망령(928m)이다. 09:00, 2시간 넘게 걸어서 정자 한 채가 서 있는 수망령에 도착한다. 수망령 고개를 넘으면 거창군이다.

 

수망령은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분기한 진양기맥이 월봉산을 솟구친 후 큰재를 지나 서쪽으로 거망산과 황석산 줄기를 낳은 후 오른쪽으로 맥을 낮춘 고갯마루로 다시 금원산과 기백산을 솟구치고 진주 진양호까지 뻗어가는 진양기맥을 낳았다.

덕유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한동안 마신다.

 

# 높은 산은 눈꽃이 피었다. 

 

# 길의 눈은 점점 많이지고... 

 

# 오른편은 기백산과 금원산 중간지점으로 오르는 임도 

 

# 임도 눈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 드디어 수망령에 도착!!! 

 

 

# 거창 내려가는 길도 아무 발자국이 없다. 

 

 

 

# 수망령의 꺼꾸로 만든 안내도 

 

 

출처 : 崇仁堂(atman)
글쓴이 : 숭인당(崇仁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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