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가을산행
경북 구미의 명산 금오산 가을산행
자연환경연수원-칼다봉-성안-현월봉(정상)-약사암-대혜폭포-탐방지원센타
도상거리 약 8.8km
언제;2009년 10월 18일
누구와; 나 홀로
금오산 입구에서 바라보는 현월봉(정상)
저 능선을 한바퀴 돌아보자
금오산. 경상북도 구미시, 칠곡군 북삼면, 김천시 남면 경계에 있는 산.
본래는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외국의 사신들이 중국의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 불렀다가 당의 대각국사에 의해 금오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산 능선은 '왕'(王)자 같기도 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산정에는 고려시대에 천연의 암벽을 이용해 축성한 길이 3.5㎞의 금오산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막기 위한 내외성(內外城)으로도 이용되었다. 산 전체가 급경사를 이루며, 좁고 긴 계곡이 굽이굽이 형성되어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많아 1970년 6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7.9㎢이다. 구미시가 성장함에 따라 관광개발이 촉진되어 등산·휴양관광지로 발전했다. 계곡 입구에는 금오산 저수지가 있으며, 북쪽 계곡에는 높이 27m의 명금폭포, 의상이 수도했다는 도선굴, 고려말의 충신 길재의 충절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 등이 있다. 해운사·대각사·진봉사 등의 고찰과 금오산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을 비롯해 남쪽 계곡에는 선봉사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가 있다. 산 중턱의 전망대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며 금오산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수영장 등 관광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어릴적 친구와 안부전화중에 어디 산에 한번가자고 이야기되어
기차예약도 하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도 준비하였는데 산행 전날 밤
친구의 전화 曰 ;급한 집안일로 산행을 못하겠다; 라고 한다.
집에서 멀지않은 포천 명성산 억새산행을 생각하고있다가 행선지를 바꾼것인데.....
다소 서운한 마음이지만 친구에게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새벽에 집을나서 금오산 입구에 도착한다.
호젓한 호반도로.
예전 구미시에 볼일보러 왔을적에 케이블카를 이용,산중턱에 있는 폭포와
도선굴을 돌아본 적이 있어 오늘은 자연환경연수원에서 시작하여 칼다봉을 거쳐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어보자,
자연환경연수원입구,산책하는 사람들이 한가롭다
등산로입구 표시와 첫 이정표.
.
저수지를 끼고도는 호반도로를 거쳐 칼다봉으로 오르는 코스로 올라간다.
잡목과 소나무사이의 등로는 완만하기도, 때로는 급경사를 이루기도 한다.
이 코스로는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않는지 칼다봉에 오를때까지 인기척을 느끼지못한다.
소나무아래 등로에는 갈비(소나무낙엽의 경상도사투리)가 깔려있다.
뒤돌아보니 저수지 뒤쪽으로 구미 시가지와 낙동강변의 들판이 보인다.
가야할 능선 아래론 거대한 석벽이 장관이다.
내려다보이는 콘크리트 기둥(?)들.
이리로 가는것이 맞을까?
맞나보다.
칼다봉을 지나 주능선에 진입하니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제법있다.
등로는 급경사의 양쪽 사면사이로 마루금의 한가운데로 평탄하고 부드러운 흙길로 이루어져있고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어 포행(걸으며 명상하는것)하기엔 제격이다.
어디로 가는 도로일까?
지나온 봉우리를 돌아보니 파란하늘과 울긋불긋한 산색이멋진 조화를 이루고있다,
건너보이는 정상부에는 꽤넓은 부지위에 여러개의 철탑과 시설물이 보인다.
마루금을 걷노라니 바람을 피할길없이 세찬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바람소리에 가끔들리던 산새소리도 묻혀버리고 땀은 식어 추위를 느낄정도이라
한쪽 바위아래 양지녁에 자리잡고 준비해온 간식을 먹노라니
어릴적 겨울 초등학교 등교길에 차가운 겨울바람에 추워지면 들판 논두렁아래
납작업드려 바람을 피해 해바라기하며 추위를 피하던 추억에 젖어본다.
눈을 부릅뜬 장승이 서있다
한참 걷다보니 제법 긴 내리막을 내려가고 무척 넓은 평지에 장승과 돌탑,
원두막 두동이 있다.
제법 물이 많이 담긴 우물과 잡초가 우서진 슾지등이 예전에는 사람이
살아갈만한 터전이 있었던것 같다.
무슨나무이고 분홍색으로 가득매달린것은 꽃인지 열매인지?....
금오산성 중수비인가?
정상으로 가는 등로 머리위에 매달린 표시기.
이곳뿐이 아니고 포천 운악산 동봉에서 서봉가는 등로에,
국망봉 정상근처의, 길을 잃을 염려없는 신작로같은 곳에
표시기를 달아놓고 가는 몇몇 산꾼들의 자기과시를 하는 행위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런 행위도 자연환경 오염이 아닐지.......
제발 어느산이던 아니온듯 다녀가소서.........
무었에쓰이는 시설일까?
산의 정상부 대부분을 몇개의 커다란 철탑이 세워져있는 시설물과
운동장만한 헬기장이 차지하고있어 정상석이 서있는 부분은 무척 협소하다.
운동장만큼 넓은 헬기장.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주변의 들판,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들판을 이루었다.
구미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국제일문이라,절경을 자랑하는 것인가?....
거대한 석벽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정상에서 멀지않은곳에 동국제일문이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양쪽의 거대한 석벽아래로 난 계단길을 지나니 약사암이 자리잡고,
건너편 조그마한 봉우리에 위치한 범종각과는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 봉우리에는 돌탑들이 여러개 서 있다.
△ 저곳에 어떻게 올라갔고 무었하는 시츄에이션일까...▽
이 경치 좋은곳에 처음 터를 잡은분의 혜안이 놀라웁고나....
출렁다리를 한번 건너보고 싶지만.....
하산길은 약사봉 뒷사면으로.....
약사암 구경을 마치고 하산을 하다 마애보살입상 700m라는 표지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건만 석불의 모습이 보이지않아 의아해 하며 돌너덜과 숲속길을 지나가니
지나온 방향으로 마애석불600m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잘 살펴보며 걸었는데.....
뒤돌아서 마애석불 방향으로 조금 걷다가,
에라....부처님께서 내게 모습을 보이기싫어 숨어버리신것을 찾아 나서는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싶어 다시 돌아서 하산한다....
분명히 700m 화살표의 이정표를 따라 갔는데....
이 무슨 말씀?....
▽어느 바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밑이 보이지않았는데 이석벽 위이었나보다.
가파른 계곡을 내려가다 올라오던 어느 여자분의 비명같은 탄성에
뒤돌아보니 불이붙은듯 븕게 타는 ....곱게 물든 단풍이있다.
계곡을 더듬어 내려오니 거대한 석벽들이 많이보인다.
가뭄에 물이 마른 폭포.
통치기간중의 공과에대한 설왕설래가 많지만 국가발전의 틀을 세우신 분의
족적을 만난다.
절벽에 홈을 파서 발디딜곳을 만들고 철주를 세워 쇠사슬로 난간을만든
도선굴 가는길, 맞은쪽에서 오는 모델(?)이 아름답다.
촛불의 그을음에 굴 천장이 검게 그을렸다.
일제강점기에 구미면장 "김승동"이라는분이 석통로를 개설하였다는 판석이
천장에 걸려있다.
도선굴에서 바라본 구미시와 낙동들판.
날아가는 까마귀 한컷,
도선굴아래 300m지점의샘터,돌멩이에 구멍을 뚫어 돌을파서 만든
구시(?)로 물이 떨어지게 하였다.
금오산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고려 말에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켰으며,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을 두었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공사가 실시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수송공비가 성을 쓸쓸이 지키고 있다.
등로 머리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 도선굴과 대혜폭포 근처까지 올라간다.
놀면 놀면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탐방지원센터까지 내려왔구나,
키가 커다란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서있는 길을 지나
고려말의 충신 야은길재선생의 유적도 구경하고
금오저수지와 금오산을 되돌아 바라보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